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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조선시대

조선의 2대왕 - 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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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성은 이(李), 초명은 방과, 휘는 경, 본관은 전주, 자는 광원이다.  정종은 공민왕 6년(1357년) 7월 18일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 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품이 온화하며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나 태조 이성계를 도와 여러 전쟁터에 참여하여 왜구를 토벌하는 등 공적을 세웠다. 재위기간은 1398년~1400년이다. 

 

 

왜구토벌, 조선개국

고려 충정왕 시기부터 본격화 된 왜구의 침입은 고려 우왕 시대의 14년간 378회에 이를 정도로 절정에 달하였다. 이 시기에 정종은 아버지 이성계를 수행하며 지리산까지 노략질하기 위해 진출한 왜구를 치는데 일조를 했으며, 이에 대한 공로로 그는 추충여절익위공신에 책록 되고 봉익대부 지밀지사사 겸 군부판서, 응양군상호군을 역임하였다. 

 

고려말기에 권문세족들에 의해 고려 조정이 농단, 전횡되어 피폐되었으며 국외적으로는 장기간 왜구 침략으로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시기였다. 정종은 우왕 12년, 순군만호부의 부만호가 되어 고려 조정을 농단하고, 전횡하던 친원파 이인임 등을 축출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조선 태조 1년 아버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정종은 영안군으로 책봉되었고, 태조의 친위부대인 의흥친군위 절제사로 임명되었다. 조선개국 초기의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는 중에도 왜구가 계속하여 침탈하고 있었고 명나라로부터의 압박도 계속되고 있어 이로 인해 영안군 이방과는 1393년 문화현(황해도), 영년현(평안남도)의 두 현에 출군 하여 왜구를 물리쳐 공훈을 세웠다.  태조 3년(1395년, 39세)에는 중군절제사에 임명되어 병권에 관여하였고 요동 공격을 위한 훈련을 담당하게 되었다. 

 

조선 2대왕으로 즉위하다

태조 6년(1398년), 음력 8월에 동생 정안군이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본래 왕위에 뜻이 없었던 영안군은 왕세제가 되기를 극구 사양하였으나 태조의 장자 진안대군은 이미 사망하였기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후 1개월 뒤인 1398년 음력 9월, 태조의 양위로 경복궁에서 조선 제2대 국왕으로 등극하였다. 정종은 우왕 3년(1377년)부터 21년 동안 전쟁터를 누빈 군인 출신이며, 일찍이 동생 정안군(태종 이방원)이 조선 창업 대의에 가정 열적적이었던 것을 인정하였고 직접적으로 동생 정안군(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추천하는 등 왕위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정종은 원년(1399년)에 한양에서 개성으로 천도하였고, 집현전을 설치하여 경적의 강론을 담당케 하였다. 또한 분경금지법을 제정하여 관인들이 권세가에 청탁하는 것을 방지하였고 법전을 정비하기 위하여 '조례상정도감'을 설치하였다. 

사병을 혁파하여 군사권을 의흥삼군부로 집중하였고,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고려 말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양인으로 환원시켰다.

 

동생에게 양위하다

정종 2년(1400년)에는 제 2차 왕자의 난을 계기로 정안공(태종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봉하고 9개월 후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맏형으로서 남아있는 형제들 간의 반목을 일소하고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선택이었고 재위 중에도 형제간의 친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재위 중에도 회안대군을 탄핵하기 위해 논의하려 할 때도 논의를 사전에 차단 금지케 하였다. 상왕으로 물러난 후 정종은 인덕궁에서 거주하면서 사냥과 격구, 연회, 온천여행 등으로 세월을 보내다 세종 1년(1419년) 9월 63세의 나이에 승하하였다. 

 

정종이라는 묘호는 사후 250여년 후인 1681년(숙종 7년), 제6대 단종과 함께 정해졌다. 정종(定宗)의 의미는 '태조의 업적을 계승하여 정국을 잘 다스렸으며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크게 염려하였다'는 뜻이다.

능은 황해도 개풍군 흥교리에 있느 후릉이고 강화도 북쪽의 예성강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