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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조선시대

조선의 3대왕 -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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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태종(1367년 6월21일 ~ 1422년 6월 8일)은 조선의 제3재 임금(재위기간 1400년 ~ 1418년)으로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공을 세웠으며, 왕자 시절 받은 작호는 정안군, 정안공이다.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으며, 형인 정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왕위에 올라 공신들을 축출하였으며, 사병을 혁파하였고 호패법과 6조 직계제를 실시하였다. 처가와 사돈 등을 비롯한 왕실의 외척을 숙청하며 왕권을 강화하였다.

 

 

역성 혁명 활동, 조선 개국

이방원은 1367년 고려 함흥부 귀주에서 이성계와 부인 한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성계의 아들들이 대개 무인으로 성장했지만 이방원은 어릴 때부터 무예보다는 학문의 더 좋아했다고 한다. 1382년(우왕9년) 진사시에 합력하였고 1383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명나라에 파견되어 북경을 다녀왔고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고려 왕조 유지 세력을 제거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이성계 세력을 축출하고 위화도 회군이후의 개혁법령을 폐지하려는 정몽주를 제거하였다. 이때 정몽주와 이방원이 주고 받은 시조가 바로 '단심가'와 '하여가'이다. 

 

정몽주 등을 제거하여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진세력의 기반을 굳건하게 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1392년 이성계가 태조로 등극함에 따라 이방원은 정안군에 봉해졌다. 

 


왕자의 난


조선 개국에 공이 컸던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세자 책봉에 불만을 품고 있던 터에 정도전의 사병 혁파에 반팔하여 1398년 부왕 태조의 와병중임을 틈타 아내 민씨의 후원과 이숙번, 하륜, 조영무등 사병 혁파 반대세력, 이화, 이천우, 민무구 등 종친, 외척과 결탁하여 제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이때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의 개국공신들과 이복동생 무안대군 방번, 방석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 사건으로 태조는 영안군 방과에게 보위를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나게 된다. 

이때부터 이방원은 국정을 장악하게 되고 이후 형제들 간에 다시 한번 분란이 발생하는데, 이방원의 넷째형인 회안대군 방간이 1400년 왕위에 오르기 위해 제 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방원은 쉽게 이 난을 진압하고 정종으로부터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책봉된지 9개월 만에 정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치세

태종은 조선 초기의 혼란을 종식시키려 왕권 강화와 유교 정치에 온 힘을 쏟았다. 사병을 혁파하여 병권을 일원화 하였으며 중앙 제도와 지방 제도를 정비하여 고려의 잔재를 없애려고 했다. 군사제도를 정비하여 국방력을 강화했을뿐 아니라 토지,조세제도를 정비하여 국가의 재정을 안정시켜나갔다. 국방에도 힘을 써 국가기강을 안정시켰다.

태종은 1402년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정적을 색출하기 위해서 신문고를 설치했으며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옮기는 등 국가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태종은 왕권의 안정, 강화를 위해 자신이 왕이 되도록 도와준 공신들을 유배보내거나 처형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조선이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군사적 발전을 이루게 될 수 있었다. 

태종의 장남 양녕대군은 학문 연마를 게을리하고, 자유분방하여 왕세자에서 폐위시키고 셋째 아들인 충년대군을 왕세자로 삼았다. 

 


퇴위와 죽음


태종은 재위한지 17년 10개월만인 1418년 8월 10일, 옥새를 충녕에게 넘긴 뒤 수강궁으로 물러나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상왕이 된 후에도 그는 4년동안은 국정을 감독하였고, 병권과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상왕이 된 후에도 아들 세종을 위해 노력하였고 외척세력에 세종이 간섭받을 것을 염려하여 며느리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과 그의 세력을 처형하였다.  1421년 개국의 공을 인정받아 태상왕으로 진봉되었고 1422년 5월 10일 세종, 양녕대군, 효령대군 등 아들들과 후궁 및 그 자식들, 그리고 신하들이 애통해 하는 가운데 56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묘호는 태종이며, 시호는 성덕신공문무광효대왕이다. 숙종과 고종 때 존호가 더해졌으며 최종 존시는 태종 공정성덕신공건천체극대정계우문무예철성렬광효대왕이다.

태종은 1422년 9월6일 광주 서대모산에 원경왕후와 합장되었다가 후에 천장하였으며 능호는 헌릉,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원경왕후의 능과 함게 쌍릉으로 조성되었다.